제도 시행 5주년 기념 세미나서 주장...醫 “의료인 마음도 헤아려야”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25일 의료분쟁 조정 및 감정제도의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의료분쟁조정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이른바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최근에는 핫이슈였던 ‘자동개시’를 골자로 법이 개정,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자동조정개시제도 도입으로 변화를 맞은 의료분쟁조정법이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까? 관련 전문가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제도 성공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대한의료법학회, 한국의료법학회는 25일 백범기념관에서 ‘의료분쟁 조정 및 감정제도 발전방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대표변호사는 자동개시 등 법 개정으로 인한 의료분쟁조정법의 미래상은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위해서는 감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조정의 합리성과 규범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이 같은 배경을 갖추지 못한 경우 법으로 자동개시를 강제하더라도 실효성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특히 의료사고 분쟁은 다른 분쟁에 비해 더 민감한 만큼, 임상지침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감정과 조정을 갖추지 못하면 외면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분쟁조정제도 발전을 위해 자동조정개시 제도 도입에 반발했던 의료계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신 변호사는 “의료책임에 대해 의료배상책임보험료의 사회적 부담 증액, 무과실책임보상 제도 확대, 입증책임전환 등 다양한 정책적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며 “이 같은 다양한 정책적 대응을 병행, 환자는 안심하고 진료 받을 수 있고, 의료인은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뢰는 ’소통과 대화‘에서 출발“

의료분쟁조정제도 발전을 위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에 토론자들도 공감을 표했다. 

대법원 임혜진 재판연구관은 “조정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참여 당사자들 간의 신뢰가 기본 전제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소통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참여 당사자들의 가질 수 있는 예측할 수 없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재판연구관은 “중재원이 구체적, 실효적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한다면 의료분쟁조정제도를 통해 실현코자 하는 이상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서로 서상수 대표변호사는 자동조정개시 제도와 함께 새롭게 도입된 간이조정제도를 구체화할 것을 제안했다. 

간이조정제도를 통해 조정성립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간이조정제도는 ▲신청인과 피신청인 간에 큰 이견이 없는 경우 ▲과실 유무가 명백하거나 사실관계·쟁점이 명백한 경우 ▲의료분쟁에 대한 조정신청 금액이 500만원 이하인 경우 등은 감정부와 협의해 의료사고 감정을 생략하거나 조정부 또는 조정부의 장에 의한 조정이 이뤄진다. 

서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 간이조정제도를 활용한 경험이 늘어나고, 감정부에서 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간이조정으로 회부하는 비율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조정 성립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간이조정 요건에 대해 법 규정의 한도 안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규정을 마련하는 한편, 절차에 대해서도 실무적인 규정과 양식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의료계 “의료인도 헤아려야” vs 환자 “의사 불리한 제도 아냐”

이날 흥미로운 부분은 의료계는 보수적 진료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의료인의 마음을 헤아려달라 이야기한 반면, 환자단체는 의사에게 마냥 불리한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 점이다. 

대한의료법학회 이숭덕 회장은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조정 당사자 간의 합의와 자발적 참여가 핵심인데, 자동개시는 자발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의료인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각에서는 의료분쟁조정 제도에 자동개시가 포함되면서 의사들이 방어진료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며 “이는 의사들이 의도적으로 방어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분쟁조정 제도는 조정 당사자간의 합의가 중요하지만, 의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라며 “이미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법이지만, 의료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백진영 이사는 “자동조정개시 제도는 의료진에게 충분히 처치와 치료의 정당성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해놨다”며 “의사들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자율적인 분쟁 해결 절차로, 형사처벌특례에 따라 의료진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만 백 이사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는 의료진에게 과다한 진료 환자가 배당되는 현재의 의료환경 시스템”이라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인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조정 시스템 개선을 통해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정은영 과장은 “자동조정개시를 위한 법 개정 과정에서 많은 노력이 투입됐고, 이로 인해 국민의 관심과 기대도 높아진 상황”이라며 “이제는 중재원의 전문성과 공정성,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질 제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예산문제, 전문가 육성 및 교육 등에 대한 시스템이 미비하지만, 이를 개선·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의료분쟁조정제도가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다듬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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