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4차산업 토론회, 확연히 다른 현실인식-빛 바랜 미래전략...정부도 이례적 비판

▲25일 국회 양승조-전혜숙 의원 주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주관으로 열린 '국민의료 질 향상을 위한 건강보험 발전방향' 토론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새 심사·평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여론환기에 나섰지만, 심사·평가 업무를 바라보는 심평원과 외부의 시각차만 확인하는 모양새가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5일 국회 양승조·전혜숙 의원과 함께 '국민의료 질 향상을 위한 건강보험 발전방향'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심평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심사·평가 업무에 있어서도 과학기술을 접목한 새 시스템을 도입,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급여비 청구 사전점검서비스를 강화하며, 지능정보기술을 적용해 현재의 전산심사를 고도화한 인공지능형 심사를 도입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후관리를 효율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평원 이소영 연구조정실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수평과 개방, 자율과 협력"이라며 "이해 당사자의 갈등이 첨예했던 보건의료계에도 공유가치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적시성 있는 제도의 정비와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평원의 이 같은 주장은 다수 전문가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이른바 '심평의학'으로 통칭되는 사회적인 인식과 괴리가 큰 탓이다. 

'심평의학' 이유 있는 비판...전임 연구소장의 쓴소리

▲서울의대 김윤 교수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작심한 듯 심평원에 대해 쓴소리를 내놨다. 김 교수는 심평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을 역임한 해당 분야 전문가다.

김 교수는 현행 심사체계의 문제점을 'penny wise pound foolish(푼돈은 아껴쓰면서 목돈은 제대로 쓰지 못한다)', '심평의학'이라는 두 가지 용어로 정리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심사와 평가 시스템은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며 "일례로 과거 척추수술 급증 사례와 같이, 검사와 약값 등은 엄격히 관리를 하면서도, 실제 수술을 받지 않아야 할 환자가 수술받는 일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심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심평원 자료를 보면 이의신청 인정률이 52%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의신청의 절반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첫번째 심사조정이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지원마다 심사결과가 다르고, 본원에서도 올해 받은 심사결과와 내년에 받은 심사결과가 다르다"며 불명료한 심사기준과 무리한 삭감, 일관되지 않은 심사결과 등이 '심평의학'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누가 심사를 진행했고 왜 삭감이 됐는지 설명도 불충분하다"며 "'건보법 시행령 별표 몇 조에 의해 심사조정됐다'는 심사조정사유서가 의료인에게 납득할만한 설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평가도 마찬가지. 김 교수는 "3년전 관련 연구 용역을 시행, 평가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전향적 평가와 근거 기반의 의료 질 가산 설계 등을 골자로 하는 평가체계를 제안했지만 (이를 반영해) 새로 개발된 지표가 하나도 없다"며 "결국 3년의 세월을 허송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심사체계를 의사 중심, 의무기록 기반, 진료분야 단위 심사로 전환하고 평가를 전향적, 전문가 중심의, 근거기반 평가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요양기관, 알고도 삭감 택한다?" 심평원식 현실 진단 '논란'

심평원도 전문가 중심의 선순환체계로 심사·평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동의했지만, 현실을 보는 눈은 조금 달랐다.

특히나 쟁점이 된 것은 심사의 객관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이의신청'에 관한 관점. '이의신청 인정률 52%'의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요양기관이 이의신청 제도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심평원 이소영 실장은 이의신청 인정률이 52%에 달한다는 김윤 교수의 지적에 대해 "이의신청 건수 자체는 전체 심사건의 1.2%에 불과하며, 그 중 인정된 것이 절반이라는 얘기"라며 "또 이의신청이 인정된 사례 가운데 절반은 단순한 청구오류로 자료만 보완해서 제출하면 되는 것들"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요양기관이 잘 몰라서 발생한 오류도 있겠지만, 자료누락으로 삭감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감일까지 청구를 해야 급여비를 받으니 '일단 청구하고 나중에 이의신청을 하자'는 식의 형태도 존재한다"며 "어떻게 하면 요양기관과 심평원 모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요양기관이 이의신청을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에 의료계는 답답한 심경을 표했다. 

대한병원협회 서진수 보험부위원장은 "요양기관이 태만해 이의신청을 한다는 발언에서 이해부족의 문제가 크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며 "이의신청을 많이하는 의료기관, 의료인은 심평원의 교육대상에 들어, 이른바 소집을 당한다. 거기에 불려가는 의료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기본적으로 상호간 선의가 있다고 인정해야 문제의 단초가 풀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도 이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보건복지부 이재란 보험평가과장은 "지난해 제기된 건강보험 행정심판 5만 4000건 가운데, 공단으로 상대로 한 200건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삭감과 관련된 행정심판이었다"며 "심사가 하루 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데 전폭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심사 도입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냈다. 

그는 "인공지능심사를 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하면 오히려 이의신청, 심판청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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