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뇌질환으로 여겨지던 파킨슨병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파킨슨병 발병 원인이 뇌가 아닌 장(腸)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된 데 이어, 최근 미국의 한 기업이 장내 신경을 타깃으로 한 치료제 개발에 투자 유치를 한 것이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가 저해돼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겨졌다. 이에 학계에서는 뇌 신경에 집중해 파킨슨병 완치를 위한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파킨슨병 발병 원인이 장일 경우 그동안 뇌 신경을 타깃으로 했던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에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美 '엔테린', 장내 신경 타깃 한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 돌입

미국 기업 '엔테린(Enterin)'사는 17일 장내 신경을 겨냥한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약 1270만 달러(약 142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 뇌가 아닌 장을 타깃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회사는 지난 2월 장내 신경을 타깃으로 한 파킨슨병 치료제 'ENT-01'의 임상 1/2상에 돌입했으며,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임상시험 속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ENT-01은 파킨슨병의 원인 중 하나인 신경염증 유발물질 '알파시누클레인(alpha-synuclein)' 단백질을 겨냥하는 경구용 약물이다.

회사는 알파시누클레인이 장에서 먼저 축적돼 장과 뇌를 연결하는 장-뇌 면역축(gut-brain immune axis)을 따라 뇌에 영향을 주면서 파킨슨병이 발병한다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만성 세균성 장염 환자의 경우 세균을 치료하기 위해 장벽 신경에 알파시누클레인이 많아지는데, 과발현되면서 알파시누클레인이 뇌로 이동해 파킨슨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ENT-01은 장 신경계에서 알파시누클레인 활성을 차단하는 kenterin이라 불리는 스쿠알라민(squalamine)을 포함해, 알파시누클레인의 염증 유발작용을 차단하고 배변활동을 촉진하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즉 ENT-01로 장에서 알파시누클레인의 활성을 억제해 파킨슨병을 치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미국 조지타운의대 Michael Zasloff 교수는 "동물모델에서 스쿠알라민이 알파시누클레인의 생성을 억제하고 독성을 낮추는 것을 입증했다"며 "앞으로 장 신경계 기능 향상을 목표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며, 파킨슨병 치료에 효과를 보인다면 향후 장을 타깃으로 한 다른 질환으로도 적응증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킨슨병 환자의 '두 번째 뇌' 위장신경계…근거는?

회사가 장을 타깃으로 한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에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파킨슨병 환자는 질환 발병 전 공통적으로 변비, 체중감소, 삼킴곤란 등의 소화기계 증상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변비는 파킨슨병 초기부터 말기까지 나타나는 증상으로 대부분 파킨슨병 환자는 장운동이 감소해 삶의 질도 크게 낮아진다. 때문에 파킨슨병에서 위장신경계를 '두 번째 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스웨덴 룬드대학 Staffan Holmqvist 교수팀은 파킨슨병 환자의 알파시누클레인을 쥐 모델에 주입해 경과를 관찰한 결과 알파시누클레인이 장에 분포한 미주신경을 타고 뇌간 미주신경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했다(Acta Neuropathol 2014;128(6):805-820).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Timothy Sampson 교수팀은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높은 쥐를 장내 미생물을 없앤 무균쥐와 없애지 않은 쥐로 분류해 두뇌 독성 섬유질 및 운동장애 증상 등을 비교했다(Cell 2016;167(6):1469-1480.e12). 그 결과 무균쥐는 장내 미생물을 없애지 않은 쥐보다 두뇌 독성 섬유질이 적었고 떨림 등의 운동장애가 적게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파킨슨병 환자의 장 박테리아를 무균쥐에게 주사한 결과, 6~7주 후 파킨슨병 증상이 없었던 쥐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운동장애가 나타났다. 그러나 파킨슨병이 없는 정상인의 장 박테리아를 무균쥐에게 주사한 경우 운동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십이지장궤양 치료에 사용되는 미주신경절단술을 받은 환자에게서도 파킨슨병 예방 가능성이 나타났다. 1970~2010년 미주신경절단술을 받은 9430명과 받지 않은 37만 72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줄기미주신경절단술(truncal vagotomy)을 받은 환자군에서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22% 감소한 것이다(Neurology 2017;88(21):1996-2002).

"파킨슨병-장 관련 있다는 가능성만 확인…확실한 연관성은 '글쎄'"

파킨슨병 발병 원인이 장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가능성은 있지만 정설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질환의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선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고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기존에 확인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다는 것이다. 

고려의대 박건우 교수(고대 안암병원 신경과)는 "최근 우울증을 포함한 여러 질환의 발병 원인이 장내 세균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다 보니 파킨슨병에서도 장을 타깃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이 장에 있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논의가 됐지만 아직 가능성을 확인한 정도다. 정확한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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