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의 0.1% 아기 해치거나 스스로 목숨 끓을 위험 드러내

7월 27일 충북 보은에서 36세 여성이 4개월 된 아들의 입과 코를 막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같은 달 31일에도 서울 금천구 38세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6개월 된 막내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과 입을 수차례 졸라 숨지게 해 온 사회에 충격을 줬다.

경찰수사에서 피의자인 두 엄마는 모두 출산 후 오랫동안 산후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산후우울증 때문에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산후우울증'을 방치한 '산후정신증'이 부른 참사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산후정신증, 망상·환청 등 조현병 동반

전체 산모의 0.1%는 아기를 해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위험성까지 드러낸다. 바로 '산후정신증'이 동반된 경우다. 산후정신증 환자의 4%가 본인의 자식을 숨지게 했고 5%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Korean Journal of Pediatrics Vol. 48, No. 5, 2005).

산후정신증은 산후우울증 증상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주요 증상이 망상, 환청과 같은 조현병이 동반되거나 양극성 장애 형태를 띠어서다. 예를 들면 △혼란을 느끼고 매우 불안해 하는 경우 △하나님이나 외부의 힘이 자신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 △본인의 아이가 기형아라는 잘못된 믿음을 드러내는 경우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망상과 환청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이 같은 산후정신증 증상들은 대부분 산후 첫 3개월 이내 나타나는데, 눈여겨볼 부분은 산후정신증에 유독 취약한 여성들이 있다는 점이다.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거 양극성 장애 발병 이력이 있는 여성은 산후정신증 발병 위험이 최대 35%까지 상승했고, 과거 산후우울증, 산후정신증 발병 이력이 있는 여성 역시 산후정신증 재발 확률이 50% 가까이 증가했다.

가족력도 무시할 수 없는 산후정신증 발병 위험 요인 중 하나다. 가족 중에 양극성 장애 환자가 있는 경우 산후정신증 발병 위험이 그만큼 상승했다.

현재 산후정신증은 자해와 타해의 위험이 상당히 높은 만큼 입원치료가 1차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아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전문가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입원 후 일반적인 조현병 치료와 비슷하게 항정신병 약물 등이 처방된다.

성균관의대 전홍진 교수(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산후정신증은 산후우울증과 구별이 필요하다. 이전에 양극성 장애 병력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지 면밀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이어 "산후정신증은 분명히 입원치료가 필요한 응급질환이지만 환자가 입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이 환자의 정서적 행동적 변화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후우울증, 경력 단절로 이어져

그렇다면 산후우울증은 산후정신증과 어떻게 다를까?

이에 앞서 여성 10명 중 9명이 겪는다는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분이 변하고, 가끔은 아이를 괜히 낳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럴 때마다 아기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에 한없이 우울하기만 한데, 이를 산후우울감 또는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라고도 부른다. 보통 산후 3~5일째 가장 심하지만 일주일 후 자연스레 치유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산후우울증은 극심한 불면증과 함께 여성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할 수준의 증상이 동반된다.

종일 우울하고,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2주 넘게 지속되면서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전 교수에 따르면 산후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은 직장을 그만두는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약물 오남용·알코올 즐기는 여성, 산후우울증 조심해야
현재 국내 지침서는 출산 후 여성이 기분저하, 기쁨이나 흥미의 상실, 수면장애, 체중감소, 기력상실, 흥분 혹은 정신운동지체, 부적절한 죄의식, 집중력 감소, 죽음이나 자살에 관한 잦은 생각 등의 증상 중 5가지 이상 소견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지속되면 '산후우울증' 진단을 내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특히 증상 중에서 △흥미나 기쁨의 상실 △우울감 중 하나는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또한 분당제일여성병원 한성식 원장에 따르면 △임신 전 우울증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산모 △가족 중 우울증이 있는 산모 △자살을 경험했거나 청소년기에 가족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산모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은 산모 등도 산후우울증 발병 위험이 매우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알코올이나 흡연을 하던 중 임신했거나, 불면증으로 인해 수면증 등의 약물 오남용 위험이 높은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치료는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와 비슷하지만 치료율은 우울증보다 훨씬 좋은 편이다. 주로 인지행동치료, 항우울제 단독요법 등이 시행된다.

그중에서도 전기를 통해 경련을 유발하는 전기경련치료(ECT)가 산후우울증 및 산후정신증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약물치료와 병용되는 사례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전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역할이다. 특히 남편의 관심과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상담이나 심리요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전문의는 산후우울증 조기진단은 물론 아기에게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엄마와 아기의 상호 작용을 개선해주고 애착 형성 발달을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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