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 중증도 평가·출혈 조절·항응고요법 재시작 시기 등 담은 전문가 합의문 발표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는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을 예방하고자 와파린 등의 비타민 K 길항제(VKA) 또는 비-비타민K 길항제 경구용 항응고제(NOAC)를 복용한다.그러나 약물의 항응고 효과가 클수록 출혈 위험도 함께 증가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임상에서는 항응고요법을 받는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 중 매년 약 1%에서 출혈이 나타난다고 추정된다.이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심방세동 가이드라인에서는 심방세동 환자의 출혈 관리 전략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미국심장학회(ACC)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항응고요법을 받은 심방세동 환자의 출혈 관리 알고리즘을 담은 전문가 합의문을 발표했다(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12월 1일자 온라인판).ACC는 출혈 중증도에 따른 출혈 관리 전략을 제시하면서 출혈이 심각한 경우 항응고 역전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ACC 전문가 합의문에서 강조한 출혈 관리 알고리즘의 세부 내용을 살펴봤다.출혈 중증도에 따라 '주요'·'비주요' 출혈로 분류ACC는 항응고제를 복용한 환자에서 출혈이 발생한 경우 주요(major) 또는 비주요(non-major) 출혈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혈하면서 출혈 중증도에 따라 장기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를 결정하기 위함이다.주요 출혈은 △특정 부위에 출혈 발생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 △출혈로 헤모글로빈이 2g/dL 이상 감소 또는 적혈구 팩을 최소 2유닛 투여 등 세 가지 중 하나 이상 해당된 경우로 정의했다.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비주요 출혈로 봤다.주요 출혈에 해당되는 특정 부위는 △두개내 △중추신경계 △흉부 △복강내 △후복막 △관절내 △근육내 등으로, 이 같은 부위는 출혈이 발생했을 때 심각한 장기 기능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NOAC 복용 시 문제가 되는 위장관 출혈은 주요 출혈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위장관 출혈이 혈역학적 요소(hemodynamic compromise)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치명적인 주요 출혈이라면 '항응고 역전제' 투약출혈 조절 및 관리는 주요 또는 비주요 출혈에 따라 접근법이 다르다. 먼저 주요 출혈이 나타났다면 즉시 항응고요법을 중단한 후 출혈을 조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이어 주요 출혈이 중요한 부위에서 발생했거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치명적인 출혈이라면 환자 상태를 안정화시키고 항응고 작용을 억제하는 항응고 역전제(reversal agent)를 투약할 것을 강조했다. 이 같은 위급한 상황이 아닌 주요 출혈이라면 출혈 조절에 실패했을 때 항응고 역전제 투약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아울러 출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혈소판 감소증, 요독증, 간질환 등의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 이를 관리하면서 출혈 부위에 대한 수술 또는 시술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비주요 출혈이 나타난 환자는 입원이 필요하거나 수술 또는 시술을 받아야 할 때 항응고요법을 중단해야 하고,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출혈을 조절하면서 항응고요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항응고제의 맞춤형 역전제, 세분화해 제시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항응고 역전제다. 항응고 역전제는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치명적인 출혈이 나타났거나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등의 긴급한 상황에서 지혈을 도와 환자가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ACC는 △VKA △직접 트롬빈 억제제인 다비가트란 △제10혈액응고인자(Factor Xa) 억제제인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으로 나눠, 출혈 조절을 위해 투약할 수 있는 역전제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VKA의 역전제는 비타민 K 또는 프로트롬빈 복합 농축액(prothrombin complex concentrate, PCC)을 언급하면서 혈장 수혈도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PCC가 허가되지 않았기에, 국내 VKA 복용군에서 출혈이 나타났다면 비타민 K를 투약하거나 혈장 수혈을 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비가트란의 역전제는 지난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다루시주맙(idarucizumab)'에 큰 무게를 뒀다. 이다루시주맙은 RE-VERSE AD 중간분석을 통해 두개내출혈 환자에서 다비가트란의 항응고 작용을 100% 역전시키는 효과가 입증됐다(NEJM 2015;373:511-520).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적응증을 획득해 임상에서 다비가트란의 역전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제10혈액응고인자 억제제의 역전제는 PCC를 제시하면서 현재 개발 중인 '안덱사네트 알파(andexanet alfa)'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안덱사네트 알파는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에만 특이적으로 항응고 작용을 역전시키는 약물로, FDA 승인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향후 FDA 승인을 받게 되면 이번 전문가 합의문뿐 아니라 향후 심방세동 가이드라인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대 최의근 교수(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안덱사네트 알파가 아직 FDA 승인을 받지 못해 국내·외 임상에는 적용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FDA 승인을 받게 된다면 이다루시주맙처럼 안덱사네트 알파가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의 역전제로서 1차 약물로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응고요법 재시작 시기는 환자와 논의 필요

출혈 관리 후 환자 상태가 안정화되고 항응고요법을 받아도 문제없다고 판단되면 출혈 위험을 재평가해 항응고요법을 재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자가 △특정 부위에 출혈 발생 △재출혈 고위험군이거나 재출혈로 인한 사망 또는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 △출혈 원인이 확인되지 않음 △수술 또는 침습적 시술 예정 △환자가 항응고요법 재시작을 원하지 않은 경우 등 다섯 가지 중 한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항응고요법 재시작 시기를 늦출 것을 권고했다.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면 항응고요법 재시작이 가능하다.

주목할 부분은 환자의 의사가 항응고요법 재시작 여부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ACC는 의료진과 환자는 항응고요법을 다시 시작할 시기와 함께 위험과 치료 혜택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최 교수는 "환자가 출혈을 경험했다면 항응고요법을 다시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게다가 항응고요법을 재시작했을 때 출혈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기에, 약의 효과가 우수하더라도 환자의 원하지 않는다면 항응고요법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며 "다만 RE-VERSE AD 연구에서 이다루시주맙 투약 후 항응고요법 재시작이 늦어지면서 혈전성 사건이 나타났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했을 때 의료진이 환자가 늦지 않게 항응고요법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응급의학과·마취과, 항응고 역전제 역할 인지해야"

전문가들은 ACC 전문가 합의문이 미국·유럽 심방세동 가이드라인과 큰 차이는 없지만, 전체적인 과정을 알고리즘화했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아직 국내에서는 이번 합의문과 같은 형식의 출혈 관리 알고리즘이 없기에 향후 진료지침 개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합의문에서 항응고 역전제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부분에 큰 점수를 준다. 아직 환자 또는 의료진에서 항응고 역전제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최 교수는 "NOAC은 반감기가 짧기에, 출혈이 발생했을 때 다른 치료 없이 자연적으로 지혈되길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다루시주맙처럼 한 가지 옵션이 더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응급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면서 "응급의학과 또는 마취과 등에서도 이를 인지한다면 위급한 환자를 치료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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