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심장학회(ACC)·심장협회(AHA)가 발표한 2017년판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내과학회(ACP)는 "ACC·AHA의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인 130/80mmHg 이상과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을 수용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Annals of Internal Medicine 1월 23일자 온라인판을 통해 발표했다.

이 같은 ACP의 입장은 지난해 12월 미국가정의학회(AAFP)가 발표한 성명서와 일맥상통한다. AAFP는 성명서를 통해 "ACC·AHA는 그동안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을 지지해야 하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미국 시카고대학 George Bakris 교수는 NEJM 1월 17일자 온라인판에 실린 서평(Perspective)을 통해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고혈압 진단기준과 일관된 목표혈압은 문제가 있다. 고혈압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미국 내 학회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미국 내 임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AAFP와 ACP가 같은 입장을 발표한 데 이어 전문가들도 새로운 고혈압 가이드라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고혈압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 환자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 적용 어려워"

먼저 ACP는 노인에게 기존보다 강화된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을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10년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이 10% 이상이거나 심혈관질환 병력자인 성인 고혈압 환자에게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을 주문하고 있다. 

ACP 임상정책(clinical policy)팀의 Amir Qaseem 부사장은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임상에 적용하면 79세 이상의 대부분 노인 환자가 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항고혈압제를 복용해야 한다"며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노인 환자가 혈압 130/80mmHg 미만을 목표로 항고혈압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이 경우 많은 환자가 낮은 수준의 진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Bakris 교수도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환자에게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Bakris 교수는 "혈관 탄성도가 좋지 않거나 수축기혈압이 140mmHg 미만일 때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들은 혈압을 130/80mmHg 미만까지 낮추는 건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70세 이상의 노인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단독 수축기 고혈압을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최의근 교수(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혈압이 130/80mmHg 이상이면 환자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결과가 많아 그 미만으로 조절하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환자마다 예후가 다르다"면서 "노인 환자의 혈압을 강하게 낮추면 저혈압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진료실 혈압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면 환자가 오히려 힘들어한다"고 밝혔다.

"신규 고혈압 환자, 약물 먼저 복용할 가능성 남아"

   

이어 Bakris 교수는 10년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이 10% 미만인 고혈압 1단계 환자들은 생활습관 개선으로 혈압을 조절해야 한다는 권고안의 허점을 지적했다. 

생활습관을 개선해 혈압을 낮추면 환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신규 고혈압 환자로 분류된 이들은 10년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생활습관 개선 방안 중 하나로 1일 나트륨 섭취량을 1.5g 미만으로 주문했지만, 단기간 연구 및 최소한의 예후 데이터만으로 기준을 제시해 대부분 환자가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남아 있다.  

가톨릭의대 백상홍 교수(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는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을 적용하면 지금까지 고혈압이 아니던 사람들이 고혈압 환자로 분류된다"며 "이들은 체중조절, 식이요법 개선 등을 통해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하다 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베타차단제 1차 치료제에서 제외…"필요한 환자 분명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1차 항고혈압제에 베타차단제가 제외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혈압 1단계 및 베타차단제를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동반질환이 없는 고혈압 환자라면 베타차단제를 1차 치료제로서 권고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Bakris 교수는 "일부 연구에서 고혈압 환자가 베타차단제를 복용할 경우 생존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연구에서는 1일 2회 복용해야 하는 베타차단제 아테놀롤(atenolol)을 1일 1회 복용했다는 제한점이 있다"며 "심박 수가 빠르고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젊은 고혈압 환자는 베타차단제를 복용할 경우 다른 이들과 비교해 혈압 조절 효과가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고혈압 환자 특성에 따라 개별화된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예로, 비만하거나 대사증후군 또는 당뇨병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는 레닌-안지오텐신 차단제 또는 칼슘길항제를,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고혈압 환자에게는 심박 수를 조절할 수 있는 칼슘길항제인 딜티아젬(diltiazem) 또는 베타차단제 등을 투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가이드라인 변화 있을까?…유관 학회 논의 중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내 고혈압 가이드라인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국내 전문가들은 혈압을 낮출수록 합병증이나 사망률이 감소하는 게 확실하지만, 고혈압 유병률이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고 모든 환자에게 목표혈압을 일괄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한고혈압학회는 "당장 국내 고혈압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 유관 학회와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견을 조율 중이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데이터가 없을뿐더러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 유관 학회와 논의해 올해 개정된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대한당뇨병학회 박경수 이사장(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은 "진료지침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해 대한고혈압학회와 같이 모여 의논할 예정이다"며 "다만 스타틴 관련 가이드라인도 미국을 따르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에서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더라도 무조건 국내 가이드라인이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환경에 맞게 충분하게 검토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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