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계, 역동적 조직 위한 파격 인사 새바람

최근 몇 년간 제약업계에는 2, 3세 경영이 본격화됐다. 창업주의 고령화와 맞물려 신약개발과 글로벌 진출, 신사업 출범 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유연하고 역동적인 사고를 가진 경영자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약개발 선두주자인 한미사이언스 임종윤(46) 대표는 임성기 회장의 장남이며, 녹십자는 창업주 손자인 허은철(46) 사장이 맡아 혈액제제와 백신 수출사업에 성과를 내고 있다. 동아쏘시오그룹도 창업주 손자인 강정석(54) 회장 체제를 굳혀가고 있으며, 인수합병으로 몸집 불리기에 성공한 광동제약의 최성원(49) 대표는 고 최수부 회장의 아들이다.  제약업계 가장 젊은 경영인은 국제약품 남태훈(38) 대표다. 지난해 1월 사장으로 승진발령된 남 대표는 창업주의 손자이자 남영우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40대 초반 경영인 등장…젊어지는 제약계

보수적인 국내 제약업계 특성상 경영세습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최근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대웅제약. 대웅제약 윤재승(56) 회장 역시 윤영환 명예회장의 아들로 오너 일가다. 윤 회장은 매출 1조원을 목전에 둔 대웅제약을 이끌 새로운 사령탑으로 1975년 생인 전승호(43) 대표를 발탁했다. 대웅제약은 2년 전에도 40대 본부장을 대거 등용하면서 젊은 피를 수혈한 바 있으며 이 같은 파격 인사는 40대 전문경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전 대표는 2000년 12월 대웅제약에 입사해 18년째 근속 중인 대웅맨으로, 글로벌전략팀장, 글로벌 마케팅TF팀장 등을 거쳐 글로벌 사업본부를 총괄하며 해외 시장 진출과 주요 전략 제품군의 해외 수출 증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지난달 진행된 대표이사 취임식에서 전 대표는 "대웅제약을 지금보다 더 역동적인 조직으로 이끄는 한편, 직원과 소통하는 유연한 CEO가 되겠다"면서 "대웅에서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탄생하고 육성될 것이며, 이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개인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국적사에도 파격 인사가 있었다. 지난 2월 GSK 캐나다 법인 대표로 자리를 옮긴 홍유석 대표 후임으로 1977년생인 줄리엔 샘선(41) 대표가 부임했다. 샘선 대표는 공공 및 민간 부문 모두에서 풍부한 보건의료 및 제약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는 프랑스의 공립병원, 정부기관 등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12년 GSK에 입사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영국 본사의 GSK 호흡기질환 사업본부에서 글로벌 영업마케팅 전략을 주도했다.

경영 구조 및 환경이 다른 다국적사는 젊은 인재 등용이 더 익숙하다.
한국엘러간 김은영(44) 대표는 이미 4년 전 2014년 한국BMS 대표에 발탁됐으며 이듬해 한국엘러간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에는 한국, 대만, 태국, 홍콩 등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9개국 총괄대표로 승진해 아시아 지역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메나리니가 국내 공식 출범한 2013년 당시 알버트 김(45) 대표는 40세였다. 지난 5년간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김 대표는 아시아 4개국 총괄대표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사 한 임원은 "한국은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임상시험 환경 조성이 잘 돼 있고 제품력을 시험할 수 있어 아시아 국가 중 주목받는 곳"이라며 "내외부 환경에 맞는 다양한 전략은 물론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어 한국법인 대표를 지내고 승진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유연한 기업문화 vs  조기 퇴직 위기감

제약업계에 부는 젊은 바람은 역동적이고 수평적인 기업문화 조성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조기 퇴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국내 상위사 기획팀장은 "제약업계 영업·마케팅은 대상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고정적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며 "40대 전문경영인의 등장은 과거지향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제약사를 이끄는 대표들은 약값을 비싸게 받아 리베이트로 사용했다는 제약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고, 장기간에 걸친 신약개발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또 변화를 빠르게 인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젊은 감각이 필요하다"며 "능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리더의 유연하고 혁신적 사고방식은 내부적으로 업무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조직의 주축인 리더 연령이 낮아지면서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에 오너일가가 아닌 40대 전문경영인의 등장은 분명 파격적인 인사"라면서 "해당 회사가 아니더라도 임원들의 동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능력을 인정받아 대표자리에 오른 것이지만 그만큼 퇴직 시기가 빨리 찾아온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며 "젊은 인재들의 기용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사 임원은 "어리고 능력 있는 후배들이 승진하면서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아 몇 년 전 이직을 했다"며 "혁신, 과감한 추진력 등을 이유로 진행된 인사조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없지만 연륜과 경험에서 나오는 전략도 필요하기 때문에 신구 조화가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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