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 ... "일차의료 전문의 포괄적 진료능력 갖춰"

최근 일차의료연구회·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가 '주치의제도 바로알기 : 시민과 의사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책자를 펴냈다. 오랫동안 주치의제도 안착을 위해 노력해온 이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주치의제도의 의미와 국민과 의사들이 주치의제도에 대해 갖는 오해와 불안에 대해 다뤘다. 특히 주치의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다른 나라의 사례, 주치의제도를 한국에 단계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간략하게 정리했다.이 책의 대표저자인 정명관 (대한가정의학회 정책위원 / 정가정의원 원장) 원장은 서문을 통해 "지금 내가 힘든 건 게을러서도 아니고, 수가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였고, 내가 일하 는 현장인 일차의료가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였다"라며 "일차의료연구회와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에서 여러 나라의 주치의제도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고, 국민들도 살고 의사도 살 길은 주치의제도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MO에서는 총 10회에 걸쳐 주치의제도 바로알기를 연재한다.싣는 순서1.주치의제도의 의미.2. 국민들이 주치의제도에 대해 갖는 오해와 불안(3회)3. 의사들이 주치의제도에 대해 갖는 오해와 불안(3회)4. 주치의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불안5. 주치의제도가 잘 실시되는 나라의 사례6. 한국에서 주치의제도의 단계적 실행 방안참여 전문가-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 탑동365일의원 원장)- 김철환 (전 인제의대 교수 /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안산상록의원' 원장)-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 일차의료연구회 초대 회장)- 임종한 (인하의대 사회의학과 교수 / 한국의료사협 연합회 회장)- 임형석 (정읍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정명관 (대한가정의학회 정책위원 / 정가정의원 원장)- 최용준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홍승권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14. 의료 수가나 보험료 등이 많이 오르는 것은 아닐까?
▲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최용준 교수

행위별 수가제 100%인 현행 진료비 지불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주치의제도를 시작하면서 의료 수가 인상과 새로운 수가 항목 추가는 불가피합니다. 그 결과 진료비는 단기적으로는 증가할 것이고, 시민의 진료비 부담 정도가 늘면서 국민건강보험료도 인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제도는 정착하면서 의료비를 줄이게 됩니다. 

첫째, 일차의료 현장에서 질병 예방, 건강증진에 애를 쓰면 외래이용 횟수가 줄어 당연히 의료비가 감소할 것입니다. OECD 통계 자료에서 현재 한국의 외래 이용 횟수가 여러 나라들 평균의 3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비 상승의 주요 원인인 만성질환이나 노인 건강문제 등을 주치의가 잘 관리하여서 의료비 급증을 줄이게 됩니다. 그 외 여러 재정적 장점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료비를 줄이거나 급격한 상승을 완만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둘째, 최초 접촉이나 조정기능이 강화되면 닥터 쇼핑이 줄고 효율적 의료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또 지속성 높은 일차의료 이용으로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나라처럼 진료비 지불 제도를 개편하면 '의료 수가'개념 자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한국은 보건기관을 제외하면 동네의원의 진료비는 100% 행위별 수가제로 지불합니다. 개별 진료비 지불 제도는 장단점이 있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도록 다른 진료비 지불 제도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중 하나가 주치의에 등록한 주민 한 명마다 일정한 진료비를 지급하는 인당 정액제(인두제)입니다. 한 해 동안 등록 주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비용은 인당 정액제로 지불하고 그렇지 않은 진료비는 행위별 수가제로 지급하게 하면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그다지 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의료 수가' 개념은 지금과 다를 것입니다.

주치의제도 도입으로 포괄적 일차의료를 제공하려면 진찰 시간은 지금보다 길어야 합니다. 환자 교육이나 상담 등 전에 없던 수가 항목도 추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이 팀을 이뤄 일차의료에 적극 관여하면 또 다른 수가 항목 추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의료 시스템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여총 진료비 증가세 완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효과는 주치의제도가 정착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실현될 성질의 것들입니다.

▲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고병수 회장

15. 주치의는 강제 할당이 되는 건가, 아니면 지역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건가? 

주치의를 둔다는 것은 지역 주민이 마음에 드는 의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원하는 주치의 동네의원에 가서 등록을 하고 이후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주치의를 강제로 할당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지역 의사회나 주치의 관리조직에서 한 동네의원에 등록 주민이 너무 많아지면 의사들이 시간에 쫓겨서 충분한 진료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거나 질 낮은 진료를 하게 되므로 등록 주민 수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또 주치의 의료기관은 스스로 등록 주민 수가 넘치면 등록을 안 받아주기도 하므로 원하는 주치의를 선택하지 못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16. 유명하고 실력 있는 의사를 주치의로 두려고 경쟁이 일어날 것 같다. 

(고병수 원장)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느끼겠지만 사람들은 유명세나 실력 차이로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의사가 얼마나 꼼꼼히 진료를 하느냐,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을 해주느냐, 이것저것 빠뜨리지 않고 봐주느냐를 보고 환자들이 찾아옵니다. 거기에 예방이나 지속적인 관리를 잘 해준다면 주민들은 그 의원을 찾아서 등록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등록 주민수를 많이 둔다면 그 의사는 수입을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의사는 적은 등록 주민수를 두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선의의 경쟁입니다. 

좋은 평판이 난 동네의원의 주치의에게 등록 주민 수가 많아 진료받고 싶어도 대기 순번이 밀린다고 생각되면 주민들은 차선책으로 다른 동네의원을 찾아서 등록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조절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한 예들은 외국에서 실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 주민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 동네에도 실력 있고 친절하다고 알려진 의사에게 환자들이 많이 몰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약이 밀리고, 진료 대기 시간도 많이 걸리다 보니 주민들 스스로 다른 의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는다고 얘기합니다. 

▲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최용준 교수

17. 지금처럼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에 비해서 주치의제도의 장점이 무엇인가?  

주치의 제도가 정착되면 환자의 의료 이용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중 하나는 주치의에 의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또 입원이나 응급 의료, 그 밖의 전문 의료가 필요할 때 주치의가 환자의 현명한 의료 이용을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환자가 알아서 적절한 의료 기관이나 의료인을 찾아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는 셈입니다.

한국의 의료이용 실태를 보겠습니다. 다리를 삐면 정형외과, 귀가 아프면 이비인후과, 눈에 염증이 있어 보이면 안과를 찾아갑니다. 주치의가 있으면 이런 흔한 질병이나 손상이 있을 때 주치의를 찾아가 원스톱 서비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치의들은 눈병에서 소화 불량까지, 심각하지 않은 근골격계 문제, 사람들이 흔히 겪는 다양한 건강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때문입니다.

일차의료 전문가인 주치의들은 몸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이나 마음의 건강도 같이 살피는 전인적 돌봄을 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주치의라면 웬만한 건강 문제는 솜씨 있게 해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의료가 지역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건강상의 문제 대부분 8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주치의는 현명한 의료 이용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와 인터넷은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일반인이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건강 및 의료 분야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주치의는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해 왔으므로 그의 병력이나 건강 상태, 심지어 가정 형편까지 잘 알고 있게 됩니다.

주치의 본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언제, 누구에게, 어떤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적절한 의료 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게다가 의뢰를 하고 나서도 잘 치료받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상태가 좋아지거나 가정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게 되면 되의뢰를 받아서 치료의 연결성을 가지고 돌보게 됩니다.

18. 주치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만 될 수 있나? 

(최용준 교수) 제도 도입 초기에는 주치의가 되길 원하는 의사 모두에게 주치의 자격을 개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제도에 참여하길 원하는 의사를 상대로 제도 시행 전에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하고, 주치의가 되기를 원하는 일부 과목 전문의의 경우에는 반드시 소정의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이상적인 주치의의 역량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2016년 4분기 건강보험통계상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5950명으로 전체 의료기관 의사 9만7713명의 6.1%, 의원 및 보건기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3896명으로 전체 의원 및 보건기관 의사 4만886명의 9.5%에 불과합니다. 일차의료를 담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이것은 가정의학과 외의 여러 분야 의사들이 그간 일차의료 의사 구실을 해 왔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에 다른 전문의들이 함께 지역사회 보건의료를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전문의 제도가 발전한 미국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 내과 및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노인의학 전문의를 일차의료 의사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그에 가까울 것입니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전에 재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돼야 합니다.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원하는 경우에,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않은 일반의나 다른 분야 전문의는 필수적으로 소정의 재교육 과정을 거치도록 합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의과대학의 협력하에 운영되고 있는 '의사 재훈련 및 재진입 프로그램'은 참고할 만한 본보기입니다.

▲ 정읍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임형석 과장

19. 일차의료 중심의 주치의는 특정 질환 전문의에 비해 실력이 없지 않나? 

주치의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주치의는 전문의가 아니니까 오진을 많이 할 것 같다'라든지 '주치의는 전문의에 비해 실력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주 듣는 오해 중 하나입니다.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인데, 주치의제도가 도입된 국가에서 의료의 질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주치의제도가 시행되는 나라는 지역에서 일차의료기관(동네의원)을 개원하려면 의대 졸업 후 4년에서 6년 정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치의를 일차의료 전문의(primary care special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차의료 전문의와 상급병원에 근무하는 단과전문의의 실력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입니다. 어떤 특정한 상병이 의심돼 진료의뢰서를 갖고 오는 환자를 진료하는 단과전문의는 자신이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는 그 분야에 대해 진료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차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아직 특정한 질병으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모호하고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일차의료 전문의를 만나게 됩니다.

일차의료 전문의는 이런 증상들을 감별할 수 있는 포괄적 진료 능력이 필요합니다. 단과전문의는 단과전문의로서 실력이 필요하고, 일차의료 전문의는 일차의료 전문의로서의 실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인하의대 사회의학과 임종한 교수

20. 등록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나 여행을 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 

등록된 주민들이 이사를 하게 되면 가까운 거리가 아닐 때 새로이 주치의를 선택해 등록해야 합니다. 여행을 할 경우, 여행지에서의 응급처치와 관리를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사전 조사를 미리 해두고, 필요한 예방접종, 여행보험 등에 대해서 주치의로부터 안내를 받는 게 좋습니다.

외국에서는 나라마다 국내 여행지에서 무상으로 진료를 하는 곳도 있고, 약간의 진료비를 받는 곳도 있습니다. 주치의처럼 서비스를 받지는 못해도 주치의 등록을 한 사람이라면 여행 중일 때라도 주치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처럼 진료비 혜택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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