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신약의 접근성 향상을 외치며 허가-급여 이원주의를 힐난하고 있는 다국적사들이 정작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허가-급여 연계제도는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값 산정 및 급여등재 지연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정작 정확한 근거는 공개하지 않아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허가-급여등재 연계 신청 '전무'

최근 대한종양내과학회 학술대회 기간에 진행된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특별세션에서 우리나라의 항암제 급여 등재기간이 허가 후 평균 789일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다국적사들을 회원사로 둔 KRPIA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다국적사들이 허가 후 본사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실제 급여를 신청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급여 시기를 저울질하거나, 적응증을 조율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일부는 약가 산정을 위한 근거자료 보완 과정에서 심사기간이 늘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자진 취하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제약사들이 경제성을 충분히 입증할 근거와 함께 급여등재를 신청했음에도 정부때문에 789일이 걸린다는 것은 아닌 셈이다. 

오히려 정부측에서는 급여 신청 후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을 240일에서 270일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서는 이보다 빠르게 심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는 평가기간 단축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 2014년 9월 식약처 허가-심평원 평가연계 제도를 신약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급여등재 기간을 줄이고자 약제급여평가 담당자가 시판허가 단계에서 제약사 자료를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로, 2016년 10월에는 희귀의약품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희귀질환치료제 관련 단 한 건의 신청도 없었다는 것이 정부 측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곽명섭 과장은 "제도적으로는 허가와 동시에 급여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제약사들이 전략적인 판단으로 식약처의 허가 후 급여 신청을 늦추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순수하게 제약사의 선택"이라며 "그럼에도 심평원과 복지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같은 회사지만 나라별 약가 몰라

다국적사들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A7 평균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리한 약가를 요구함으로써 급여 등재율은 떨어지고 급여등재까지의 기간도 길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이중가격이 일반화돼 있어 고시된 액면가와 실제 약가에 차이가 있어 A7 약가를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Health Policy지 발표된 유럽과 북미, 호주 등 11개 국가의 정부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비밀계약을 통한 가격 인하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인하율도 상당한 변이를 보이고 있어 공시가격의 불투명성이 크다고 나왔다.

고려대 약학대학 최상은 교수 역시 지난해 심평원 의뢰로 발간한 ‘제외국과의 약가수준 비교 평가 및 지침 개발 연구 결과보고서'에서 항암제 등 고가 협상 대상 약제는 가격의 불확실성이 커 실제 가격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럼에도 다국적사가 A7 평균가를 마치 ‘합리적인 약가’인 것처럼 외치고 있는 이유는 심평원에서 참고가격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평원 설명은 다르다. 이중가격이 일반화된 A7 가격은 ‘상한선’을 설정하기 위한 참고가격일 뿐, 약가협상에는 OECD 평균 가격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국적사들이 스스로 각국의 실제 약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기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도 동일 약에 대한 각국의 약가를 알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사 한 관계자는 "급여등재 전략을 세우기 위해 본사 측에 나라별 책정된 약가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측에서도 각국의 약가 자료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약가 통제를 얘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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