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혜 기자

대한고혈압학회가 강력한 혈압 조절을 내세운 미국발 고혈압 급행열차에 탑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학회는 지난달 국내 고혈압 진단기준을 기존과 동일하게 '140/90mmHg'로 유지하겠다는 권고안을 골자로 한 '2018 고혈압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미국심장학회·심장협회(ACC·AHA)는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로 낮췄지만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 이를 수용·개작하던 모습과 다른 행보다. 

이에 미국 기준 적용 시 국내 성인 2명 중 1명이 고혈압 환자가 된다는 공포는 사그라들었다. 임상에서는 고혈압 진단기준을 변경할 경우 사회·경제적 파장이 크기에 이 같은 결정에 안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학회가 6개월간 심도 있는 고민 끝에 공개한 진료지침은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학회는 고혈압 진단기준 '130/80mmHg'가 명확한 임상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기존 기준을 유지했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 심장학계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2015년 발표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지원한 대규모 임상연구인 SPRINT 연구를 근거로 한다. 제약사 지원이 아닌 국가에서 주도한 연구로 1만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다. 

결과도 목표혈압이 진료실 자동혈압(AOBP) 기준 120mmHg 미만인 적극적인 치료군이 140mmHg 미만인 일반적인 치료군보다 심혈관사건 위험을 25% 낮춰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현재도 이를 뒷받침하는 하위분석 결과와 관련 논평이 나올 만큼 학술적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고혈압 진단기준을 140/90mmHg로 유지해야 한다는 자체 근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9개 유관 학회의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을 '근거 부족'이라는 입장만으로 정리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또 고혈압 진단기준은 유지하면서 심혈관질환 중위험군인 고혈압 1기 환자의 항고혈압제 시작 시기는 오히려 앞당겼다. 그동안 '생활습관 개선'을 우선으로 내세우던 기조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기조로 바꾼 셈이다.

이 역시 자체 근거가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프래밍험 위험점수 또는 ASCVD 위험점수 등과 같은 표준화된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도구가 없다. 이 같은 실정에서 중위험군의 약물치료 시작 시기를 우선 앞당기는 건 항고혈압제 오·남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항고혈압제 복용을 일찍 시작해 심혈관질환을 조기 예방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어지러움, 기립성 저혈압 등의 이상반응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학회가 유럽 가이드라인을 수용했던 것과 달리 유럽보다 먼저 새로운 진료지침을 발표해 임상에서 혼란을 줄인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학회가 이번 진료지침으로 비교적 안전한 길을 택했다면 이제는 분위기를 바꿔 선제적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진료지침을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진료지침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진료지침에 대한 잡음이 없도록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근거로 제시해야 임상에서도 우려 없이 이를 수용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회가 근거 마련을 위한 임상연구를 시작해 자체 진료지침 개발에 돌입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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