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H 2018] 고혈압 가이드라인 개정판 탑라인 발표…진단기준 '140/90mmHg 이상'

유럽 심장학계가 지난해 미국 심장학계가 내세운 고혈압 진단기준 '130/80mmHg 이상'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유럽 고혈압 진단기준은 기존과 동일하게 '140/90mmHg 이상'을 유지한다. 이는 지난달 대한고혈압학회가 '2018 고혈압 진료지침'을 통해 제시한 고혈압 진단 기준과 궤를 같이한다.

유럽심장학회·고혈압학회(ESC·ESH)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고혈압학회 연례학술대회(ESH 2018)에서 '2018 고혈압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탑라인(topline)으로 발표했다.

최종 가이드라인 개정판은 8월 25일 독일 뮌헨에서 개최되는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ESC 2018)에서 공개된다.

국내 학계에서는 국내 고혈압 진료지침 개정판이 발표된 후 ESC·ESH 고혈압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예의주시해 왔다. 고혈압학회가 그동안 유럽 심장학계의 가이드라인을 수용·개작한 것과 달리, 유럽보다 진료지침을 먼저 발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심장학계의 입장이 미국과 같을 경우 국내 진료지침이 세계적인 행보를 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한고혈압학회 손일석 홍보이사(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는 "지난해 미국 심장학계에서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으로 제시해 큰 충격을 주었기에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과연 고혈압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였다"면서 "ESH 선택은 2013년 가이드라인과 같은 정의와 분류 유지였다"고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유럽 심장학계가 고혈압 진단기준 '140/90mmHg 이상'을 유지하면서 고혈압 진단기준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수그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고혈압 진단기준·목표혈압, 보수적 접근 필요"

유럽 심장학계가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은 까닭은 SPRINT 연구를 주된 근거로 미국 가이드라인 개정이 이뤄졌으며, 이 연구에 참가한 이들은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의 고령이면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이기 때문이다.

ESC·ESH 고혈압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장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Bryan Williams 교수는 "이번 ESC·ESH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미국 가이드라인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고혈압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은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세부적인 ESC·ESH 고혈압 진단기준을 살펴보면, 미국 심장학계가 고혈압 1단계로 제시한 '130/80mmHg 이상'을 '높은 정상(high normal) 혈압'으로 정의했다. '140/90mmHg 이상'은 미국 심장학계에서 '고혈압 2단계'로 명시한 것과 달리, 유럽 심장학계는 이 기준부터 고혈압 제1·2·3기로 세분화해 약물치료를 권고했다.

고혈압 치료에 따른 목표 수축기혈압은 강화했다. 대부분 고혈압 환자의 목표 수축기혈압은 130~13mmHg로 제시하면서 65세 미만의 젊은 고혈압 환자는 130mmHg 미만으로 강력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다만 과다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기에, 가이드라인 최초로 혈압 조절 하한치를 '120/70mmHg'로 제시했다.

아울러 65세 이상 고령의 목표 수축기혈압은 130~140mmHg로 권고했다. 2013년 ESC·ESH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고령의 목표 수축기혈압을 140~150mmHg로 제시한 점을 비춰보면 큰 변화를 준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을 모든 고령 환자에게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Williams 교수는 "고령 고혈압 환자의 목표혈압을 기존보다 강력하게 제시했으나, 이는 고령 중 움직임에 문제가 없고 노쇠하지 않은 이들에게 고려해야 한다"면서 "노쇠하면서 복지시설에 거주 중인 고령에게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의료진들의 판단하에 목표혈압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치료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복합제' 강조

초기 치료전략으로는 두 가지 항고혈압제를 병용하거나 복합제, 특히 3제 복합제를 복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권고해야 하는 근거가 있음에도 의료진들의 '임상적 타성(clinical inertia)'으로 치료를 바꾸지 않으면서 오히려 고혈압 조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이에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적정 혈압보다 약간 높거나 노쇠한 고령 고혈압 환자를 제외하고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강조하면서, 순응도를 개선할 수 있다면 복합제를 권고했다.

Williams 교수는 "각국 주요 가이드라인에서는 고혈압 초기 치료전략으로서 병용요법 또는 복합제를 제시하면서도 근거를 더 쌓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이번 ESC·ESH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병용요법 또는 복합제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부분은 제약사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전 가이드라인에서는 티아지드계(thizide) 이뇨제가 클로르탈리돈, 인다파미드 등의 티아자이드계 유사 이뇨제(thiazide-like diuretics)보다 약리학적 특성이 열등해 추천하지 않았는데, 현재 가능한 3제 복합제는 모두 티아지드계 이뇨제 반 알 용량만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즉 3제 복합제가 복약 순응도를 높이면서 24시간 균등하게 혈압 조절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3제 복합제의 효용성을 인정했다는 지적이다.

손 홍보이사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면 3제 복합제를 강력하게 권유한 대목"이라며 "다만 이러한 비판은 차치하고 3제 복합제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일대 호재를 만난 셈이다. 앞으로 모든 회사가 앞다퉈 3제 복합제 개발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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