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기반·턱없는 수가에 재활 환자들 '입·퇴원' 반복...한국형 재활의료체계 구축 시급

#28세 키다리 청년 명준씨. 마취사고로 인해 신체기능을 상실한 뒤 9년째 재활을 목표로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입원치료를 통해 꾸준히 재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명준씨는 두 달에 한번씩 다른 병원으로 '이사'를 한다. 입원료 삭감 등의 우려로 입원 두 달이 지나면 병원들이 퇴원을 요청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명준씨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은 명준씨가 1년만이라고 꾸준하고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다.

 

▲17일 국회 문정림 의원과 대한재활병원협회 주최로 열린 재활의료체계 수립방안 토론회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한국형 재활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국회 문정림 의원과 대한재활병원협회는 17일 국회에서 '바림직한 재활의료체계 수립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전문가들은 재활의료체계 미비로 인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 '재활 유목민'으로 전락했다며 이의 해소를 위한 정책개선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의료계에 따르면 재활입원병동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재활의료체계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미비하다보니 재활병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5년 현재 재활의학과 전문병원의 숫자는 전국 10곳. 때문에 대부분 일반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으나, 급성기 병상 위주이다보니 장기입원을 통한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의대 재활의학과 신형익 교수는 "중증 질병, 외상 환자들이 급성기 병원에서 충분한 재활치료를 제공받지 못한 채 퇴원, 2~3개월 간격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여러 병원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보니 전체 재원기간은 증가하지만, 개별병원에서는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입원기간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이 같은 재활병원의 부재가 수가체계 미비에서 기인했다고 보고 있다.

재활치료 보험수가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지다보니 상급종합병원에서 재활의학과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그 결과 급성기에서조차도 집중적인 재활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노인병원이나 요양병원의 경우에는 회복기 재활치료와 기본재활치료 수가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병원들이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전문적, 집중적 재활치료를 시행할 동기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신 교수는 재활환자들의 안정적 진료를 위해 한국형 재활의료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해법으로는 재활병동제도의 정립, 재활의료 수가체계 구축 등을 들었다.

신형익 교수는 "일단 일정규모 이상의 급성기 병원에 재활병상을 확보해 재활치료를 실시하며, 아급성기 재활치료를 담당할 재활병원제도를 시행해 급성기 환자들의 아급성기 회복병원으로의 이동을 원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재활병원은 인력, 시설, 장비 등을 기준으로 인증하고 사회복귀 등 성과평가와 그에 맞는 지불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가와 관련해서는 재활의료 영역 내에서의 별도의 포괄수가제 개발을 해법으로 내놨다.

입원 재활환자의 손상정도와 기능상태, 합병증 수준, 연령 등을 기준으로 미리 정해놓은 진료비를 지불하는 미국의 '입원재활병동 선지불수가'와 같이 기능상태를 반영해 '재활의료 포괄수가'를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수가 현실화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재활의학회 전민호 차기이사장은 "재활의학 관련 수가는 그동안도 원가보전이 안되는 수준이었다"며 "이는 올해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에서도 크게 좋아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말 필요한 수가는 원가보전을 해야 한다"며 "재활난민, 재활유목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이 적절한 의료행위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활의료 체계화와 더불어 재가 재활치료 활성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국내 급성기 척수 장애인에 대한 수술적 치료와 초기 재활프로그램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데 반해 사회복귀를 위한 사회재활 프로그램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는 사회재활 프로그램의 수가가 산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활환자들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서는 재가 재활치료 활성화 등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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