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후 성인 여성에 우울증 스크리닝 첫 권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직후의 성인 여성은 반드시 우울증 선별검사를 받아야 한다(권고등급B)"

미국질병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가 18세 이상 성인에 대한 우울증 선별검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JAMA 2016;315:380-387). 2009년 이후 7년만에 개정된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처음으로 출산 전후의 여성이 검사 대상으로 포함돼 눈길을 끈다.

권고등급 B는 검사를 받았을 때 중등도 수준의 혜택이 있단 의미다. 위원회는 "선별검사의 혜택을 지지하는 근거가 쌓인다면 추후 A등급으로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검사시기나 간격을 정하진 않았지만 진단 시에는 '에딘버러 산후우울증 척도(Edinburgh Postnatal Depression Scale, EPDS)'가 유용하며, 인지·행동치료도 증상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시돼 있다.

또한 임신 또는 수유 중이라도 항우울제 복용은 가능하지만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의에 의한 위험도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자살·범죄로도 이어져...사회 질서 위협

산후우울증이란 출산 후 4~6주, 즉 산욕기 동안 각종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질환을 말한다.

출산 후 동반되는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달리,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만큼 심각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게 주요한 특징. 이 같은 증상이 이미 임신 기간부터 시작된다는 보고가 있은 뒤부터는 조기진단이 더욱 강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것과 관련,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산후우울증이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음을 시사한다고 봤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산모 7명 중 1명이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문제는 산후우울증을 제 때 치료하지 않을 경우 아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자살충동이나 범죄 행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경기도 파주에서는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던 30대 주부가 산후우울증으로 두 아들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얼마 전 2살 딸아이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아 질식사하게 한 30대 주부의 범행 원인도 산후우울증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에는 생후 4개월 된 아이를 가진 30대 한국인 여성이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기숙사에서 투신 사망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 참여한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마이클 피그넌(Michael Pignone) 교수는 "출산 전후 여성의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명확한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며 "해당 기간 중 의료진이 간단한 몇 개의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에서 산후우울증 지원 시급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정신건강재단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교수(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산후우울증을 포함한 우울증의 선별검사 시 정확한 진단과 치료, 지속적 관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장소에서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2009년에 발표된 성명과 대동소이한 내용이지만 그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다시 한번 원칙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제대로 된 진단과정을 생략한 채 무분별하게 항우울제가 처방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까지도 최신 연구를 포함해 체계적인 검토과정이 진행됐다는 것. 국내에서 논의 중인 '일차의료기관에서의 우울증 선별검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대한정신건강재단에서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심평원 자료를 토대로 산후우울증의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산모중산전후 1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은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치료율 10~12%)과 비교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인데, 전국정신건강실태조사에도 산후우울증은 포함되지 않아 현재로선 유병률 파악조차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올해 정신건강실태조사에 산후우울증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복지부 출산정책과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 교수는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선별과 치료지원, 사회적 지원을 법제화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관련법이 개정되어 유병률 조사와 치료, 인식개선이 이뤄지고, 장기적으로는 직접적인 지원과 사례관리를 위한 산후우울증 지원기관이 설립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산모는 육아가 중요한 시기라 의료기관과 복지서비스의 접근성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며 "해외에서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개입 시 집 또는 병원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문서비스가 등 다각적인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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