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비급여에 갇힌 의사들①] 급여 진료만으로 경영 한계..."비급여, 생존 위한 필수항목"

 
바야흐로 비급여 전성시대다. 피부미용부터 비만, 영양주사, 도수치료에 이르기까지 비급여 진료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개원가 전반에 깊숙히 파고들었다.급여과와 비급여과, 각 전문과목 간의 구분도 무색해진 지 오래다. 적지 않은 개원의사가 생계를 위해 전문진료과목을 전환하거나 숨긴 채 비급여 영역으로 뛰어들었다."한국 개원가는 통증과와 감기과, 미용잡과뿐"이라는 자조는, 비급여의 확산과 전문과목 붕괴로 요약되는 우리 개원가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① 비급여 강요하는 사회, 벼랑 끝 개원의들② 달라진 개원 판도...거세지는 외부 도전③ 공룡화 된 비급여 시장, 해법은 없나?

# 지방 중소도시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했던 의사 A씨. 환자가 줄을 서는 소위 '대박의원'은 아니었지만, 지역 내 소아 환자와 내과 진료만으로 어느 정도 병원 운영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의원을 서울로 옮기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환자가 그야말로 뚝 끊긴 것. 기존 의원들이 환자를 선점하고 있는 데다, 일반적인 내과-소아과 진료만으로는 경쟁상대를 이길 '차별성'을 갖기 어려웠다. 수익이 없다 보니 매달 월급날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

결국 A씨는 의원을 이전한 지 6개월 만에 의원 앞에 영양주사·비만치료가 가능하다는 비급여 간판을 내걸었다. A 원장이 비급여 진료를 표방한 것은 개원 생활 12년 만에 처음이다.

# 서울에서 비뇨기과를 운영하는 B원장. 그는 지난 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휴일마다 학회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던 탓이다. 그가 학회장을 찾은 이유는 요즘 유행하는 비만 치료법과 피부미용 술기를 익히기 위해서다.

B원장이 비급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영난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 병원 간판 밑에 '토탈 성형클리닉'이라는 글자를 써 붙였다. 보톡스·필러 등의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을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비뇨기과 간판을 달고, 피부미용 진료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낯 뜨거워 꽤나 고민했지만,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학회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동료 개원의를 보면 자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힘들었던 전공의 시절을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왜 비급여 진료를 택했나

적지 않은 개원의가 비급여 진료를 선택한 이유로 '경제적인 사유'를 꼽는다. 의료계의 표현을 직접 빌자면 "살인적인 저수가가 개원의들을 비급여 전선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 진료수가가 낮다 보니 일반적인 급여진료만으로는 의원 경영이 어려웠고, 이에 차선책으로 비급여로의 전환이나 급여와 비급여 진료의 병행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급여진료 과목의 경영 마지노선은 '일평 70'이다. 적어도 하루 평균 7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손해를 보지 않고 의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가정의학과를 운영 중인 한 개원의는 "지금의 수가 안에서 의원을 운영하려면 적어도 하루에 환자를 70명은 봐야 한다. 그렇게 해도 임대료·인건비·4대 보험료 등 기본 운영비를 빼고 나면 의사에게 남는 것은 얼마 안 된다. 이익을 내자면 하루에 100명 정도의 환자가 꾸준히 들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의원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꿈 같은 얘기"라고 털어놨다.

신규 개원의의 고민은 더 크다. 초기투자 비용을 떠안고 있어 지출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데 반해, 고정적인 환자 풀을 가지고 있지 못해 수입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기존 의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존 급여진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원가 관계자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하나 열자면 임대료에 인테리어 비용 등을 합해 통상적으로 4~5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대부분 은행 대출을 통해 초기비용을 마련하는데 이에 들어가는 이자만 한 달에 30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 1~2명을 고용하면 은행이자에 임대료·인건비까지 월 1000~1500만원 정도가 앉은 자리에서 빠져나간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의원이라면 일평 70으로도 유지가 되겠지만, 신규 개원의는 턱도 없다. 급여진료만으로는 주 6일 근무를 해도 넉넉하게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힘들다. 그러니 비급여 진료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 개원가 "비급여, 선택 아닌 필수"

역설적이게도 통계로 확인되는 개원가의 진료비 매출은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지표에 따르면 의원 한 곳당 평균 요양급여비용은 2010년 3억 4783만원, 2013년 3억 7681억원, 2015년 3억 9988만원으로 집계됐다.

개원가 입장에서는 이 또한 억울한 얘기다. 그들이 체감하는 현장의 상황과는 온도차가 큰 탓이다.

개원가 관계자는 "전형적인 통계의 함정"이라며 "개원가 내에서도 특정 병원에 환자와 매출이 몰리는 현상이 수년 전부터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소규모 일반의원은 환자감소와 수익감소를 체감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비급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항목"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심평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상위 10%의 의원이 전체 의원급 급여비의 35%가량을 나눠 가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원가 내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됐다는 얘기다.

최상위 그룹의 기관당 평균 청구금액은 연간 13억 7000만원으로 의원급 평균의 4배, 최하위 10% 그룹 평균 매출의 10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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