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에 갇힌 의사들②] 영역파괴·탈전문과 바람...시장확대 경계, 금융당국 '정조준'

 
바야흐로 비급여 전성시대다. 피부미용부터 비만, 영양주사, 도수치료에 이르기까지 비급여 진료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개원가 전반에 깊숙히 파고들었다.급여과와 비급여과, 각 전문과목 간의 구분도 무색해진 지 오래다. 적지 않은 개원의사가 생계를 위해 전문진료과목을 전환하거나 숨긴 채 비급여 영역으로 뛰어들었다."한국 개원가는 통증과와 감기과, 미용잡과뿐"이라는 자조는, 비급여의 확산과 전문과목 붕괴로 요약되는 우리 개원가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① 비급여 강요하는 사회, 벼랑 끝 개원의들② 달라진 개원 판도...거세지는 외부 도전③ 공룡화 된 비급여 시장, 해법은 없나?개원가를 강타한 비급여 열풍은 개원시장의 모습도 새로 그렸다. 이른바 영역파괴, 탈전문과 바람이다.정형외과 도수치료, 내과·가정의학과의 영양주사 처방 등 전문과 진료와 연계해 비급여 진료로 영역을 확장하는 사례에 덧붙여, 최근에는 전문과 간판을 아예 떼거나 간판에 간판을 추가해 비급여 진료에 나서는 경우도 흔하게 목격된다.개원가 지각변동...영역파괴·탈전문과 '바람'전문과목 미표시는 이미 개원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산부인과나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가 전문과 간판을 떼고, 가정의학과나 내과와 유사한 형태로 1차 진료를 보면서 비만클리닉 등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전문과 미표시 의원의 숫자는 5500곳을 넘었다.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의 숫자가 2만 9000여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네의원 5곳 중 1곳꼴로 간판에서 전문과목 명칭을 지웠다는 얘기다.전문과 미표시 의원의 숫자는 가정의학과 1800여 곳, 외과가 1000여 곳, 산부인과가 600여 곳, 비뇨기과가 400여 곳으로 가장 많다. 이들은 대표적인 '난(難) 개원과목’이다.최근에는 전통적인 급여과목에서도 탈전문과 바람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실제 내과와 소아청소년과에서도 전문과 미표시로 전환한 곳이 각각 150곳을 넘는다.이들 중 상당수는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과목으로 전업한 것으로 추정된다.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외과의사라는 자부심으로 살기에 의료환경이 너무 척박해졌다"며 "전문의가 되고도 전문과목을 표방하지 않는 경우가 해가 갈수록 흔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그는 "생존을 위해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환자들의 혼란을 막자는 취지로 간판을 아예 떼는 의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병원의 정상적인 경영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전했다.기존 전문과 진료를 유지한 채, 타 진료과의 비급여 진료를 추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비뇨기과 간판을 유지하면서 피부미용 진료를 추가하거나, '○○ 여성의원'이라는 간판 아래 산부인과-체형관리-피부관리 등 세부진료내용을 함께 나열하는 식이다.개원가 관계자는 "전문과 간판을 떼고 아예 전업을 할 경우, 기존 단골환자를 포기해야 하는 데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린데도 다시 기존의 전문과 진료로 돌아오기가 어려워진다"며 "표시과목 혼합표기는 이러한 현실적인 고민을 반영한 선택"이라고 전했다.개원가 변화, 전공의 선택도 바꿨다개원가의 변화에 전공의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전문과목 전공의 지원율은 개원시장의 흐름에 따라 매년 변화곡선을 그려왔다.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의 몰락에 이어 최근 전공의 지원율 변동에서 읽혀지는 트렌드는 바로 급여과의 고전이다.실제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문과목별 전공의 확보율을 살펴보면 피부과·성형외과 등 대표적 비급여 과목의 인기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 과목의 전공의 충원율은 최근 3년간 모두 100%를 넘겼다.반면 비뇨기과의 전공의 충원율은 절반을 넘기기 힘들다. 최근 3년간 비뇨기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3년 44.8%, 2014년 26.1%, 2015년 41.4%를 기록했다.내과도 전공의 미달사태를 겪고 있다. 내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3년 90.3%, 2014년 90.4%, 2015년 91.6%를 보였다. 전통적 개원강자인 내과의 몰락은 의료계 안팎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이에 대해 김용익 전 의원은 "전문의들이 전공과 무관한 타과 진료를 하는 현상이 계속 벌어지면서, 진료과목 간 질서가 파괴돼 의료현장이 혼란에 빠져있다"며 "이는 단순히 특정과목 쏠림이라는 '현상'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의원급 의료기관의 질, 나아가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비급여 바라보는 엇갈린 의료계 시선

비급여 시장 확대를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의 시선도 엇갈린다. 일단 비급여 진료가 경영난 타개를 위한 자구책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가정의학과의사회 유태욱 회장은 "개원가 몰락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있다"며 "의사가 제도와 법을 준수하면서, 어지간한 숫자의 보험환자를 진료해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지금 개원가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달체계의 부재로 대형병원과 병원, 의원이 외래환자를 놓고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생존이 걸린 경쟁이다 보니 의사로서의 소신이나 자존심을 지키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반면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시류만 좇다 보면 장기적으로 개원가의 먹거리가 더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의 먹거리를 위해 비급여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개원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개원의사는 환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의료전달체계의 문지기"라며 "최근 상황을 보면 개원의사가 과연 1차진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부관리를 하는 의원은 도처에 있지만 정작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의원은 찾기 힘들다"며 "국민들이 간단한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진료가 가능한 의원을 찾아 다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궁극적으로 개원의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민들도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정조준'...거세지는 외부 도전

외부의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연초 하지정맥류를 시작으로 최근 도수치료, 고주파 온열치료에 이르기까지 실손보험과 연계된 비급여 진료들이 금융당국의 사정권에 들어있다.

금융당국은 이들 비급여 진료가 과도한 보험료 인상을 유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비급여 진료비를 실손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다 보니, 환자의 도덕적 해이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를 유발, 궁극적으로 과도한 보험료 지출로 이어지고, 이것이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을 가져오고 있다는 논리다.

일부 의료기관의 일탈행위가 이들 주장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도수치료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대표격이 된 데는, 이른바 '도수치료 패키지'가 큰 몫을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일부 의료기관의 경우 체형교정과 미용시술을 패키지로 묶어 도수치료 10~20회를 하면 피부관리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등의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치료에 대해서는 실손보험이 당연히 보장을 해야겠으나, 그렇다고 일각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영역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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