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압 이환·사망위험 고려" vs "심혈관질환 예방에 역부족"

 

임상의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를 가져다 주는 경우 중 하나가 바로 노인 고혈압의 치료다. 고령환자의 고혈압 유병특성으로 인해 젊은 연령대의 건강한 성인에게 적용하는 잣대를 그대로 들이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고혈압의 치료와 관련해 "단독(고립성) 수축기 고혈압과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사망위험 등을 고려해 차별화된 전략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 세계고혈압학회 "목표치 130mmHg" 제안

2. 출렁이는 목표혈압···세계가 주목

3. 혈압목표치 향배, 130mmHg에 중지

4. 노인고혈압 150mmHg 두고 줄다리기

5. "국민 평균혈압 더 낮춰 잡아야"

△ 치솟는 유병률

노인 고혈압 유병률이 겉잡을 수 없이 상승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지난 2011년 '노인 고혈압에 대한 전문가 합의문' 제목의 성명을 발표, "고령 남성 64%와 여성 78%가 고혈압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노인 고혈압의 병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65세 이상 고령 연령대에서 2명 중 1명이 고혈압 환자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2011년 우리나라 국민건강영양통계를 보면, 30~39세·40~49세·50~59세·60~69세·70세 이상 연령대 남성의 고혈압 유병률이 14.6%·31.2%·38.0%, 53.5%, 58.9%로 60세 이상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특히 여성은 3.4%·10.8%·29.7%·57.1%·71.5%로 노인 고혈압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이사장 김철호) 측도 "인구 고령화와 함게 향후 10~20년 내에 노인 연령대에서 고혈압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 학회가 당면한 최대 현안으로 노인 고혈압을 꼽고 있다.

△ 내리닫는 조절률

노인 고혈압의 더 큰 문제는 유병률에 반해 혈압을 목표치 미만으로 낮추고 유지하는 조절률은 상대적으로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ACC·AHA 성명에 따르면, 고령에서 중년에 비해 고혈압 인지율과 치료율이 높은 반면 조절률은 떨어진다.

특히 80세 이상 초고령에서는 조절률이 30% 대에 머문다. 노인 고혈압 환자들의 경우 높은 혈압의 위험은 잘 인지하고 치료에도 나서고 있으나 혈압은 제대로 조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영양통계에서 2007~2009년 고혈압 관리현황(잠정치)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의 인지율(76.9%)과 치료율(72.7%)이 높은 것은 미국과 일치한다. 그런데 조절률은 유병자(고혈압 환자) 기준 47.1%, 치료자(항고혈압제 복용자) 기준 64.1%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2011년 통계를 봐도, 60세 이상 인구의 고혈압 인지율은 남(75% 이상)·여(83% 이상) 모두가 높은 가운데 조절률은 50%에 머물고 있다.

△ 노인고혈압 딜레마

 

노인 고혈압 환자의 혈압조절은 중·장년 연령대의 건강한 성인과는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올해 75세의 이OO 할아버지는 진료실 혈압이 180/70mmHg로 명백한 항고혈압제 치료 대상이다.

그런데 혈압수치가 독특하다. 이완기혈압에 비해 수축기혈압만 유난히 높은 단독 수축기 고혈압이다.

이 경우 수축기혈압을 140mmHg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적극 강압시키다 보면, 이완기혈압도 덩달아 떨어져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골절 또는 사망위험이 돌출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천장을 뚫을 기세의 수축기혈압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단독 수축기 고혈압과 기립성 저혈압은 노인 고혈압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때문에 노인 고혈압 환자의 치료는 적극적인 항고혈압제 치료를 적용하기도, 그렇다고 느슨한 치료로 한 발 물러서 방관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여러 만성질환 동반과 다중약물 복용 등 혈압치료 예후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임상의들이 처하는 대표적 딜레마 중 하나다.

고령 한국인의 수축기혈압

한국에서 노인 고혈압, 특히 단독 수축기 고혈압의 심각성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덩달아 노인 고혈압 환자도 빠르게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국내 역학조사 결과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김현창 교수팀이 국내 고혈압 환자들을 아형별로 분류해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Korean Circulation Journal 2015;45:492-4992015), 고령층의 단독 수축기 고혈압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1998~2012년 사이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20세 이상 성인의 고혈압 아형의 유병률을 측정했다.

환자들은 최종적으로 단독 수축기 고혈압(수축기 ≥140mmHg/이완기 〈 90mmHg), 단독 이완기 고혈압(수축기 < 140mmHg/이완기 ≥ 90mmHg), 수축기·이완기 고혈압(수축기 ≥140mmHg/ 이완기 ≥ 90mmHg) 등 4개 고혈압 아형그룹으로 세부 분류됐다.

관찰결과, 2012년 기준으로 국내 고혈압 환자는 약 950만명으로 조사됐다. 유병률은 26%로 국민 3명 중 1명은 고혈압 환자인 셈이다. 연령별로는 20~29세 5%, 30~39세 9%, 40~49세 20%, 50~59세 35%, 60~69세 55%, 70~79세 63%, 80세 이상 71%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유병률이 급속하게 올라가는 모양세다.

2010과 2012년 사이 단독 이완기 고혈압은 감소한 반면, 단독 수축기 고혈압은 연령대가 높을수록(≥40세)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고립성 수축기 고혈압은 60세 이상 연령대(60~69세 14.6%, 70~79세 12.2%, 80세 이상 15%)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됐다.

△ 고령층 목표혈압

국내외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이 같은 노인 고혈압 유병특성과 치료전략을 고려해 고령층에게 전반적으로 완화된 혈압 목표치를 권고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16년 유럽 심혈관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을 보면, 60세 이상 연령대의 고혈압 환자에게 수축기 혈압을 140~150mmHg 사이로 조절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13년 유럽심장학회(ESC)·고혈압학회(ESH)도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노인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혈압을 140~150mmHg 사이로 조절하도록 권장한 바 있다. 2013년 미국의 JNC 8차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60세 이상 고령층의 혈압 목표치를 150/90mmHg 미만으로 권고했다.

대한고혈압학회도 2013년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노인 고혈압은 혈압강하에 의한 효과가 뚜렸하지만 140mmHg 미만으로 낮추기가 쉽지 않고, 목표혈압이 140mmHg 미만일 때와 150mmHg 미만일 때 예후에 차이가 없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완기혈압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 수준(적어도 60mmHg 이상)에서 수축기혈압 140~150mmHg를 목표로 치료한다"고 밝혔다.

 

△ 일각 "고령도 더 낮춰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령 고혈압 환자의 목표혈압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최근의 기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축기혈압 150mmHg 수준으로 조절할 경우, 뇌졸중 위험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는 논리다.

미국심장협회(AHA) 저널 Hypertension에 "동반질환이 없는 노인이라도 수축기혈압이 140mmHg 이상 오르면 뇌졸중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최근까지의 고혈압 가이드라인 권고에 반하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동반질환이 없는 60세 이상 노인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50mmHg 미만으로 권고한 JNC 8차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이 같은 역치값 증가가 뇌졸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연구에는 뇌졸중 병력과 만성 신장질환, 당뇨병이 없는 60세 이상 환자 1706명이 포함됐다. 등록 당시 피험자들의 평균연령은 72±8세였고, 약 41%가 항고혈압약물을 복용 중이었다.

수축기혈압 140mmHg 이하군 43%, 140~149mmHg군 20%, 150mmHg 이상군 37%의 분포를 보였다. 평균 13년 동안 추적·관찰한 결과, 전체 1706명 중 167명에서 뇌졸중이 발생했고 대부분(86%) 허혈성에 해당했다.

연간 1000명당 뇌졸중 발생률은 수축기혈압 150mmHg 이상군에서 10.0명, 140~149mmHg군에서 12.2명으로 140mmHg 미만군(6.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연령, 성별, 인종, 약물사용에 대해 보정한 후 시행한 분석에서 수축기혈압 140~149mmHg군의 뇌졸중 위험도는 140mmHg 이하군에 비해 1.7배 높았다(95% CI 1.2-2.6).

수축기혈압 150mmHg 이상군 역시 140mmHg 미만군보다 위험도가 1.4배 증가했다(95% CI 0.9-2.0). 연구팀은 "당뇨병 또는 만성 신장질환이 없는 60세 이상 노인이라도 수축기혈압을 140mmHg 미만으로 낮추는 것은 뇌졸중 1차예방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SPRINT, 75세 이상 하위분석

고령층 혈압조절 강도에 대한 논쟁은 SPRINT를 통해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노인 고혈압일지라도 적극적인 혈압조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과학적 힘을 실어준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가장 최근의 SPRINT 하위분석 결과다.

당뇨병과 뇌졸중 병력 환자들이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고령층에서 적극적인 혈압조절이 가져다 주는 임상혜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PRINT 연구는 고령층 인구가 다수 포함됐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대상환자들의 평균연령은 67.9세였으며, 75세 이상 고연령층도 30% 가깝게 포함됐다. SPRINT 연구팀은 이들 75세 이상 연령대 환자그룹을 별도로 떼어내 하위분석을 실시했다.

HYVET가 고령 연령대에서 수축기혈압 150mmHg 미만을 평가했다면, SPRINT 하위분석은 120mmHg 미만 조절의 임상혜택을 검증했다. 총 2636명을 3.1년 관찰한 결과, 집중 혈압조절군(120mmHg 미만)은 표준조절군(140mmHg 미만) 대비 심혈관사건 발생률을 34%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hazard ratio 0.66, 95% CI 0.51-0.85).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도 33% 낮췄다(0.67, 0.49-0.91]). 이상반응으로는 저혈당과 실신이 71%와 23% 더 발생했지만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연구를 주도한 Jeff Williamson(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학) 교수는 "75세 이상인 고령 고혈압 환자 중에서도 수축기혈압을 140mmHg 미만으로 하는 것이 심혈관질환 및 사망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해 그동안 150 mmHg 미만으로 권고돼 왔던 고령자들의 혈압관리가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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