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계는 최근 제5차 환자경험평가 분과위원회를 열고 평가지표 개발에 나섰지만 의견차가 커 논의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적정성평가에 도입을 추진하는 ‘환자경험평가’를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논의가 답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은 기존의 환자 만족도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난 뒤 느낀 경험을 객관화해 평가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를 ‘줄세우기’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심평원과 의료계는 환자경험평가를 위한 지표 개발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있지만, 서로 간의 큰 의견차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환자경험평가, 시대적 대세 
지난 3월 심평원은 환자의 만족도 등 환자경험을 토대로 한 적정성평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그동안 적정성평가 또는 의료기관 평가를 통해 의료행위나 시설, 인력 등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만 이뤄져왔기에 환자 입장에서 느끼는 의료의 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심평원은 지난해 ‘환자중심형 평가모형 개발 연구’를 통해 환자경험평가를 위한 평가도구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의사서비스 ▲간호사 서비스 ▲일반 치료과정 ▲병원 환경 ▲권리 보장 ▲퇴원 ▲공평한 대우 ▲전반적 평가 ▲개인 특성 등 9개 영역 29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심평원은 이를 토대로 현재 본격적인 세부 계획 수립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환자경험평가는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에게 입원기간 동안 특정 의료서비스를 경험했는지 등을 질문, 환자중심 의료의 수준을 측정하게 된다. 이는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심평원 평가1실 관계자는 “환자중심성이란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바람, 필요, 선호가 존중되고 사진의 의료에 대해 참여해 결정하는 것으로, 의료 질의 핵심”이라며 “환자경험평가는 입원 경험이 있는 국민 대상의 전화조사 방식을 검토 중이며, 현재 평가의 세부계획 수립을 위한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가 OECD,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보건의료 성과평가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시대적 대세라고 주장했다. 

심평원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환자경험을 평가해왔고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은 환자경험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성과기반 지불제도에 활용하고 있다. 

의료계 “심평원에서 왜 만족도조사를?”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경험평가가 의료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문을 품고 있다. 심평원에서 추진하는 환자경험평가는 소비자단체에서 진행하는 일반적인 병원 만족도 조사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굳이 심평원이 이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환자경험평가 분과위원회에 참석하는 의료계 한 관계자는 “살인적인 저수가 체계 안에서 의료인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런 상황에 논란이 많은 환자경험평가를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 하고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쫓아가려는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료계는 굳이 심평원에서 병원 만족도조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환자경험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평가지표로 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면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고, 의료의 질을 개선할 수 있으면서 국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평가지표로 한정해야 한다”며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평가지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의료계는 ▲치료·처치 시 대안적 방안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 ▲회진 때 충분한 안내를 받았는지 ▲퇴원 시 충분한 안내를 받았는지 등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평가지표로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의 평가도구는 측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애매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지표가 다수 포함돼 있다”면서 “평가지표 개발에 앞서 평가의 당위성과 피평가자의 수용성 등을 공급자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환자경험평가의 시행 목적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했다.  

또 다른 분과위원회 참석자는 “영국에서 실시하는 환자경험평가는 공무원인 영국의 의료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의 개념”이라며 “우리나라 의료체계 안에서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난센스다. 의료질 향상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환자경험평가, 심평원도 ‘몰라’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연구용역을 통해 도출한 환자중심평가 평가도구 최종안

이처럼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가 시대적 대세라며 도입을 주장하며 10개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예비평가까지 마무리했지만, 그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우선 심평원은 연구용역을 통해 도출한 29개 평가항목도 의료계 등과의 논의를 통해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심평원에 따르면 환자경험평가의 평가도구 개발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QI간호사회, 질향상학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심평원 평가1실 관계자는 “매달 1회 환자경험평가 분과위원회를 열고 있고, 관련 학회와 단체에 문서를 통해 의견을 접수받고 있다”면서 “연구용역에서 도출된 9개 영역, 29개 평가 항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환자경험평가의 평가대상 의료기관의 경우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 한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역시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전화설문 형태로 평가를 진행할 대상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심평원 한 관계자는 “평가를 받을 대상에 대해서도, 평가를 진행할 대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며 “환자경험평가를 토대로 한 의료질평가 등급은 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칫 대상을 잘못 선정하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심평원에서도 난감한 상태”라고 전했다. 

물론 환자경험평가의 평가지표에 대한 객관성 논란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의료계는 환자경험평가를 두고 객관성이 담보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해 온 바 있는데, 이 역시 주관적인 의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심평원과 의료계는 지난달까지 제5차 환자경험평가 분과위원회를 개최한 바 있다. 가장 최근 열린 분과위원회에서는 평가도구(설문지) 의견수렴 현황을 보고 보고받고 이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지만, 설문지의 구체적인 문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설문지 등 평가지표 역시 상당히 주관적이라 과연 신뢰도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객관성 있는 지표를 만들어야 하는 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확답을 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환자경험평가에 대한 예비평가를 얼마 전에 마쳤고, 이를 토대로 본평가로 넘어가야 할 상황인데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답답하게 같은 논의만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평원, 의료계와 논의 계속 
한편, 심평원은 이 같은 의료계의 반발에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에 대한 이해관계는 의료계만 있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당장 환자경험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심평원은 의료계의 반대,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추진 강행 주장 사이에 끼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계의 우려처럼 불통하며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 무조건적인 반발이 서운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직까지 평가지표의 틀이 완전히 개발된 게 아니다”라며 “추후 평가지표 개발이 완료되면 설명회 등을 통해 또 다시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료계는 심평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의협 관계자는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는 시행해야 할 제도라며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의견을 제기해도 수렴하려는 의지는 없는 것 같다”며 “환자경혐평가가 성공적으로 시작되고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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