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금융위 개선안 실효성 의문…가입자 부담 늘려 보험사 배 불리기”
“새로울 것 없는 ‘조삼모사’ 개선책… 정부가 나서지 말고 시장 자율에 맡겨야”

▲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 서울에서 안과를 운영 중인 A원장은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진행한 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몇 달 전 A원장은 백내장이 진행된 한 환자를 맞았다. 환자는 나이 탓을 하며 노안을 의심했지만, 명백한 백내장이었다. 

A원장은 환자에게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전하며, 시력 회복을 위한 다초점 인공수정체삽입술을 진행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인이 A원장을 찾아 고객에게 백내장 수술을 왜 했는지, 다초점 인공수정체삽입술이 왜 필요했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이윽고 손해사정인은 백내장 수술을 왜 했는지, 시력 교정 목적은 얼마나 되는지 비율을 정해 달라며 서류를 내밀었다. A원장은 답변해줄 수 없다며 손해사정인을 내보냈다.

금융당국이 일부 가입자와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서면서 의료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약관에 명시돼 있음에도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일부 실손보험사의 부당한 행태까지 포착되면서 가입자에 떠넘기기식 실손보험료 인상, 환자 요구를 맞추기 위한 비급여 유인 등 의료계가 우려했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오는 모양새다. 

政 “저렴하면서 보장은 그대로…'착한' 실손보험”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실손보험제도 개선방안을 공개하며 '착한' 실손보험이라 칭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의료쇼핑, 그리고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 금융당국의 실손보험 상품구조 개선안.

이번 개선방안의 가장 큰 변화는 보장 구조의 변경이다. 기본형과 다양한 특약 구조 형태로 바꾼 것이다. 

정부는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MRI 등 과잉진료 우려가 크거나 보장 수준이 미약한 3개 진료군을 특약으로 분리하고, 소비자가 기본형 또는 기본형+특약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비급여 진료 이용 행태, 비급여 항목 표준화 추진 경과 등을 참조해 추가적인 과잉진료 항목을 발견할 경우 특약화를 검토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의료쇼핑, 과잉진료 억제, 실손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상품에 비해 보험료가 약 25% 저렴한 기본형 상품이 공급되면서 소비자의 부담은 경감될 것"이라며 "특약 분리를 통해 일각의 도덕적 해이의 비용을 모든 가입자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불합리한 구조도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정맥류는 ‘서막’…청구빈도 높으면 보장 축소?

그동안 의료계가 우려했던 것처럼 결국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청구 빈도가 높은 질환을 특약으로 분리했다. 지난해 초 논란을 빚었던 하지정맥류 실손보험 보장 제외 사태는 서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난해 1월 금융당국은 하지정맥류 레이저 수술의 청구 빈도가 높아 과잉진료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바 있다. 이후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 등 의료계로부터 된서리를 맞고 그때서야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표준약관을 재개정했다. 

하지만 다빈도 청구항목의 실손보험 보장 축소 움직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도수치료를 특약으로 분리해 보장을 축소시켰고, 다초점 인공수정체삽입술 역시 실손보험을 갉아먹는 것이라며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이야기했다"며 "앞으로 실손보험 정책 개정을 통해 보장을 축소하는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실제 일부 보험사에서는 재작년 11월부터 환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내부 방침을 변경, 백내장 수술 후 다초점 인공수정체삽입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백내장 수술에 사용하는 다초점 인공수정체삽입술에 대한 표준약관을 개정, 시력개선이 목적이라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행태에 보험업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 실손보험 가입 고객에 대한 하지정맥류 수술이 보장에서 제외된 경우가 있었고, 백내장의 경우도 백내장 수술 후 후발성 백내장 발병 우려로 보장에서 제외하는 추세"라며 "보험사의 경향을 보면 다발성 질환에 대한 수술, 치료 보장이 제외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醫 “특약 분리, 실효성 없다”

과잉진료를 이유로 다빈도 청구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한 정부의 이번 실손보험제도 개선방안을 두고 의료계는 결코 새로운 대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보험사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손해율이 높은 실손보험을 손해율이 낮은 다른 특약과 함께 판매하고, 보험설계사는 판매수당을 많이 받고자 단독형보다는 패키지 형태로 판매해왔다. 

때문에 보험료가 패키지보다 훨신 저렴함에도 단독형 실손보험의 가입률은 전체 실손보험의 3.1%에 불과한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정부가 단독형 실손보험 판매를 유도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 이사는 "정부는 2014년 실손보험의 단독형 상품 출시 및 판매를 대책으로 내놨지만, 결국 전체 가입자의 3.1%만 단독형 상품에 가입한 상황"이라며 "이번 개선방안 역시 달라질 게 없다"고 비판했다. 

기본형+특약 구조의 실손보험 상품 출시로 가입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낮아지는 효과를 보이겠지만, 그만큼 혜택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다. 

서 이사는 "정부는 기존보다 25% 보험료가 저렴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보험사는 영리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라며 "2만원짜리 단독형 실손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받는 수당보다 10만원짜리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받는 수당이 더 큰 상황에서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전망하는 개선효과는 물론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착한 실손보험이라 흉내 내며 보험료 인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 금융당국은 이번 개선방안을 통해 착한 실손보험이 등장할 것이라 홍보하지만, 실제로 보험업계는 이미 절판·공포 마케팅을 시작했다. 

▲ 보험가격비교사이트에서 정부의 실손보험제도 개선방안 발표 후 공포·절판마케팅에 나선 모습.

“보험료 오르기 전 가입 서두르세요”...공포 마케팅 펼치는 보험사들

일선 보험비교사이트에서는 이달부터 보험료가 인상되고 보장이 축소될 것이라며 기존 보장 그대로 가입하려면 당장 가입을 서두르라며 마케팅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연초부터 실손보험료 인상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삼성, 현대, 동부 등 주요 손해보험사 8개사의 연초 실손보험 인상폭을 보면 40세를 기준으로 남성 가입자는 평균 24.6%, 여성 가입자는 평균 25% 인상됐다. 

롯데손해보험이 최대 40% 이상 보험료를 인상, 그 폭이 가장 컸고, 뒤이어 현대해상(남성 28.6%, 여성 32.4%), 삼성화재(남성 28%, 여성 22.5%) 순이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기존 실손보험료보다 저렴하리라 전망했지만 보험료 인상은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며 "특히 보험사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특약에 대해서는 갱신을 거절하며 가입 거절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가입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방만경영, 보험료의 과도한 인상 등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이 같은 변화를 줬지만, 결과적으로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부담금 인상이 '조삼모사'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특히 의료계는 이번 개선방안 가운데 비급여 MRI를 특약으로 분리한 것도 문제 삼았다. 진단적 가치를 도덕적 해이로 여김으로써 의료환경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진단이 늦어지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며 "가입자들은 MRI에 대한 부담으로 CT 등 다른 고가 진단검사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의료환경의 왜곡현상이 초래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비급여 주사제 등 치료 약제는 대체 약제가 있지만, 진단적 행위를 제한하게 되면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이는 반드시 문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손보험이 도덕적 해이 유발?…보험연구원도 의문

실손보험 등 민간보험이 가입자의 의료이용에 대한 접근도를 높여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보험업계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민간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예방행위 및 예방적 의료서비스의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은 치료적 서비스를 보장하기에 예방행위와 예방적 의료서비스의 유인이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치료적 의료서비스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증가하고, 이는 곧 예방적 의료서비스 행위를 늘어나게 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한국의료패널 2008~2013년 부가조사데이터를 분석,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민간의료보험 가입 여부는 질병예방행위 또는 예방적 의료서비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민간의료보험 가입이 건강한 생활습관이나 예방서비스 이용에 변화를 주는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민간의료보험 가입자의 25%는 비가입자에 비해 건강검진을 더 받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결과는 민간보험 가입이 사후적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기각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들은 가입 이후 흡연·음주를 늘리고 운동량을 감소시키는 사전적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없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며 "민간의료보험 가입이 건강한 생활습관이나 예방서비스 이용에 변화를 주는 원인으로 작용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醫 "보험업계 시장 자율에 맡겨야"

의료계는 실손보험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지려면 보험사 자체적으로 심사체계를 갖추고 금융당국은 보험업계의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실손보험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무분별한 과다경쟁을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성실한 가입자의 보장 강화를 위한 보험료 재책정 등 체질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 서인석 보험이사는 "치킨 회사도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는데 하물며 보험사 같은 거대기업이 상품 개발을 정교하게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금융당국에 기대어 문제해결을 요구할 게 아니라 보험상품을 보다 정교하게 개발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자체적인 심사체계를 갖추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서 이사는 "보험사의 핵심 가치는 자체적인 심사권이지만,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대형 보험사들은 이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며 "관리체계의 부재는 지급의 적정성을 통제할 기전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보험사를 위해 나서준 것도 문제다. 가입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건 보험사의 몫"이라며 "지금 같은 관 주도형 정책으로 인해 보험사가 가장 기본인 자체적 심사권까지 손 놓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관 주도 패러다임에서 탈피해 보험사 스스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기획을 위해 만났던 의료계 취재원들은 내기를 제안했다. 2014년 실손보험 단독형 상품 출시 이후 3.1%에 불과한 가입률을 보며, 이번 기본형+특약 구조 실손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를 두고 말이다. 

정부와 금융당국, 보험업계가 의도하는 기대효과가 실현될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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